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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혁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 현재는 성남 지역인 광주대단지에서 일어난 시민 항거에 참여했던 이의 일화를 다룬다.

내 학창시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진작에 감명 깊게 본 나는 같은 시대 배경을 가진 소설로 이 작품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언젠가 한 번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현실의 실행으로 옮겨진 것은 부끄럽지만 고작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방송 뉴스를 보던 중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가 자신의 인생 도서로 이 책을 꼽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시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스스로가 공장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나는 후보가 이 책을 선정한 것에 대해서 십분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70년 대 비윤리적인 공권력과 착취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서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최근에도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불법하도급으로 현장 노동자분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 여전히 사회 구조 최밑단의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부터 안전하지가 않다.

소설에서 교사인 오선생은 셋방을 내놓았는데 권씨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것도 전세금 20 만원 중 10 만원은 아예 내지도 않았고, 게다가 두 명의 자식 외에 또 한 명이 뱃 속에 자라고 있었다. 출판사에 다니던 권씨는 생애 첫 집 장만을 해 볼 요량으로 서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그의 형편으로도 구입이 가능한 광주 대단지에 전 재산을 털어 20 평을 분양 받았으나, 사실 광주대단지 분양 사업은 저소득 하층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정부 주도의 사기 분양이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소요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권씨가 이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징역을 살다가 출소한 뒤 오선생의 셋방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권씨는 전과로 인해 취직도 쉽지 않고 경찰의 감시도 따르는데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한 방도가 없어 술김에 오선생의 자택에 강도질을 시도했다 미수하게 된다. 하지만 본디 심성이 착한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우여곡절 끝에 취칙하게 된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어린 노동자가 팔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사측에 항거하며 맞서 싸운다.

소설 중반부에 죄책감에 시달리던 권씨는 자살을 기도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나는 권씨의 고통의 크기를 가늠해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의로운 사람들은 나서지 말아야 할 때 나서서 더욱 더 처지가 곤궁해진다. 그러다가 자신과 가족의 생존 위기까지 몰리면 마지막 순간에는 불의와 타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기회주의와 비겁함으로 정의를 외면하고 살지만 딱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결과적으로 훨씬 나쁜 사람이 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구조를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집안 빚으로 고등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했고 훗날 검정고시를 보고 신촌의 한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중졸로 10년 이상 지냈는데, 그 기간에 이러한 태도를 많이 겪었다.

“없이 자란 아이들은 어디가 꼬여있을 거다.”

“겉으로 온건해 보여도 옳게 자라지 못하면 인성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난 그래도 어릴 적엔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착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동화에서나 소설에서나 악당들은 늘 부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난할수록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윤리적인 태도는 아집이 되고 도덕적인 행동은 사치가 되기 일쑤이다. 권씨의 강도질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크고 작은 죄의식이 주어질 상황은 자주 있다. 공정무역 제품은 비싸고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살 형편도 못 되는데 정의감이 타고난 사람일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 확률은 높아진다. 지나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운명이라면 정의롭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차라리 윤리적일 것이다.

지난 달 공공기관에서 VIP 대상으로 하는 업무를 맡고 계신 친한 형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