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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밑커피 - 조지 오웰 <1984>

배우는 삶

소설 <<1984>> 속 ‘프롤’의 모습과 나

194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기준 미래인 1984년에 벌어지는 윈스턴 스미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빅 브라더’라는 실존 인물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인물 또는 당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다. 빅 브라더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언어, 생활패턴,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빅 브라더라고 불리는 당에 의해 조작된다.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 장치 속에서도 당에 의한 기억 조작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일기를 작성한다. 소설과 그의 일기를 읽어보면 후세에게 정확한 현실을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소명의식도 있었던 것 같다. 만약 84년 이후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윈스턴의 일기를 읽었다면 오세아니아 사람들은 본인들의 기억이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개인은 이 사회 속에서 본인의 생각을 할 수 없다. 오직 당이 원하는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지식인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인물도 당에게 ‘이중사고’를 강요받아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소설 속 ‘프롤’이라고 불리는 사회 하층 국민은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그들은 당에서 마구잡이로 생산하는 소설, 가요를 소비하면서 무지하게 살아간다. 빅 브라더와 당국은 프롤들에게 교육은 일절 제공하지 않고 단순히 살아가도록 만든다. 윈스턴은 프롤을 교육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당의 거대한 힘 앞에서 그는 작은 인간에 불과했다.

인민을 다스리는 방법은,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 -아돌프 히틀러

과거에도 소설 속 사건이 벌어진 일이 몇 번 있었다. 히틀러는 독재를 통해 유대인을 독일 국민의 무조건적인 적으로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는 故전두환씨가 3S 우민화 정책을 실시해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했다. 소설을 보는데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또한 소설 속 프롤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지 반성도 해보았다. 정치에 관심 없고, 뉴스의 일들을 사실로 믿고, 다른 사람이 맞다고 하면 맞고 아니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바보 같은 인간 말이다.

언젠가 장학생 소모임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 중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의미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깨어있는 사람’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탐구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올바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의 수가 많아진다면 윈스턴의 꿈처럼 어떤 체제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창한 내가 되진 않더라도, 소설 속 프롤의 모습처럼 파도 위를 생각 없이 유영하는 해초 같은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오늘도 열심히 배워 사회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주간장학생 시즌2 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