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샷 2022-01-19 오전 8.45.41.png

안화현_프로필사진.jpg

화현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철학 입문서보다 더 가벼운 내용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열네 명의 이름을 가진 역들에 하나하나 들르는 듯한 경험을 줍니다. 느낀 것들을 쓰기보다는, 책 속 이야기들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소개하는 글이 되었습니다. 후에 어느 역에서 제일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후 07:10, 대한민국 서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기행을 마치고

대한민국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중.

어둠이 눈을 찌른다. 햇살에 눈을 뜨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급하게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기차 출발 시각이 다섯 시였으니, 대충 두 시간을 까무룩 잠든 셈이다. 마우스를 흔들어 꺼져버린 노트북 화면을 켠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지난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 관해 쓰다 만 기행문이 눈앞에서 깜빡인다. 미완의 기록으로 남겨둘 수는 없지. 다시 손을 들어 자판을 두드린다.

기울인 글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속 한 챕터가 시작할 때 형식을 따랐다. 저자는 기차를 타고 철학자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아우렐리우스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법’에서 시작해 몽테뉴의 ‘죽는 법’으로 끝나는 여행은 새벽, 정오, 황혼을 거치며 총 열네 명의 철학을 거친다. 올곧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돌아보면 구불구불한 기찻길. 직선과 곡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속도로 나아가는 기차는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가졌다. 이처럼 저자는 열네 명 철학자 인생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하며 그사이에 숨어있던 그들의 가치, 행복, 생각에 대해 말한다.

기차 여행은 새벽에 출발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소크라테스,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라는 목적지를 들를 때마다 우리는 침대에서 나오는 법, 궁금해하는 법, 걷는 법, 보는 법, 듣는 법을 알게 된다. 이는 앞서 말했듯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침대에서 나온 뒤 차근차근 활동하며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걷는 법에서는 기차를 타는 행위마저 사색하기에는 빠른 속도라는 루소의 철학을 설명하며 우리에게 있어 ‘살아가는 것의 속도’는 어떠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의 삶’이라는 기차의 운전대를 ‘나’에게 쥐여줌으로써 스스로 그 빠르기와 크기, 무게를 조절하는 법에 대해 충고한다.

나른한 정오부터는 서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에피쿠로스,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을 통해 즐기는 법, 관심을 기울이는 법, 싸우는 법, 친절을 베푸는 법,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들으면서부터다. 동서양과 성별에 국한되지 않은 철학을 소개하며 살아가는 동안 타인, 더 작은 것들과의 상호작용을 알려준다. 앞선 ‘새벽’이 운전대를 잡는 일이었다면, ‘정오’는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기찻길의 길이와 방향을 결정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기찻길의 주변에 무엇을 놓고 심을 것인지, 이미 놓은 것이 있다면 이를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지 세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철도 옆 자그마한 풀 한 포기를 무심히 여러 번 살펴보는 세이 쇼나곤의 철학처럼 말이다.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니체와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와 함께 후회하지 않는 법, 역경에 대처하는 법, 늙어가는 법, 죽는 법을 배운다. 인생의 종착지에 다다라야만 비로소 ‘잘’ 느끼고 알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네 명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자신만의 종착역을 짓는다. 설계도를 그리고, 자신만의 재료로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인다. 한숨 돌리며 고개를 들어 지나온 길을 바라보면 구불구불한 길이 소실점 너머로 이어져 있다. 걸어오는 동안엔 곧은 줄로만 알았던 그 길이.

오늘 나의 목적지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나만의 공간, 내 집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마친 독자들의 목적지는 각자가 사랑하는 공간, 내가 제일 나다울 수 있는 공간, 내가 제일 편하게 사색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은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마냥 딱딱하기만 할 줄 알았던 철학들도 결국 이 책과 같이 가볍게 설명이 되곤 한다. 그들은 어디서 행복을 느끼고 짜증을 느꼈는지, 어떤 공간을 제일 좋아했는지 등의 정보도 우리의 기찻길 마디마디를 이어주는 재료가 될 것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마지막 행선지를 향한 여정은 시작된다. 출발 시각이 다가오고 있으니, 기차와 좌석 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