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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94 - 김홍중 『사회학적 파상력』

‘생존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1. 근대 사회와 진정성 기획

현대사회의 거대한 위기 중 하나인 개인주의는 근대적 삶이 초래한 것이다. 근대적 자유는 불안함을 만드는 원천임과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진보다. 중세는 삶의 의미와 사회적 행위의 관계가 불편부당하며 무오류한 신에 의해 선험적으로 결정되는 세계였다. 그러나 ‘합리적 개인’이 탄생하는 근대 사회에서 관계의 형이상학, 존재의 거대한 고리는 파편화되었으며 개인은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발견해야 했다. 사회적 행위의 보편적 가치, 옳고 그름의 판별은 도덕적 주관주의에 의해 해체되었으며, 유일하게 생존한 도덕률은 자신이 만든 삶의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규칙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이상, 진정성에 대한 존중이 근대 사회를 관통하는 강력한 도덕적인 힘이 된 것이다.

김홍중은 이와 같은 내면의 풍경을 ‘진정성’이라고 정의한다. 근대적 삶은 중세적 신실성을 극복하고 ‘진정성’의 세계로 이행했다. 즉 개인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역할, 도덕적인 힘(전통, 규범, 타인 따위)과 자신의 ‘진정한’ 욕망 사이의 불일치성을 직시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할 것을 기대받는다. 이에 개인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와 부딪히는 불행한 여정에 나서야만 한다. 진정성의 형성은 사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언어들을 습득하고, 그것들을 재조합함으로써 자기만의 문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진정성이 형성되기 위하여 사회의 도덕적 요구와 내면의 윤리적 성찰 간 선순환 관계가 요청된다. 사회에 의한 개인의, 개인에 의한 사회의 상호 주관적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헤겔이 시민사회를 ‘욕구들의 체계’로 판단한 것과 같이 개인은 사회와 유리되어 있지만,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에 종속되어야 한다. ‘우리’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기에 진정성은 ‘비천한 의식’으로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반역적 성격을 가진다.

  1. 한국사회의 지연된 근대화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 개인의 탄생은 군부독재에 의해 지연되었다. 1968년, 지구 반대편에서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며 자유로운 정체성을 가진 개인의 존엄성을 외칠 때, 박정희는 삶의 의미와 사회와의 관계 맺음에 대하여 고민할 기회를 단절시키는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한다. 이 헌장은 무려 1993년까지도 교과서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 반공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또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비극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1980년 군 복무 중 오발 사고로 무고한 여학생을 쏜다. 이날 이후 영호는 오른쪽 발목을 절뚝거리기 시작한다. 오른쪽 발목의 상처는 사회의 아픔과 개인의 상처가 연결되어 있다는 상징이다. 영호의 인생에서 국가폭력과 동의어인 오른쪽 발목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생채기로 남았다. 영호가 실수로 총을 쏜 곳은 광주였을 테다. 광주는 영호뿐만 아니라, 당대 시민의 마음가짐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월의 사회과학>이 말한 것과 같이 “1980년의 5월, 동해 바다의 외딴 섬 나라 ‘광주’는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 광주의 피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생의 제단 위에서 우리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처럼 해방공간에서 이른바 87년 체제의 청년들에게 이르기까지 진정성 개념은 거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방향적 양상을 보였다. 즉, (1)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자 산업화, ‘조국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거나, (2)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억압에 맞서는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열망이 아닌 진정성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할 수 없도록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