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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 조지 오웰 『동물농장』

죽음으로의 침묵, 자유로의 아우성

이 책은 당신은 자유로운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권력의 보편성을 고발한다. 권력은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팽창하며 자유를 집어삼킨다. 대중의 힘과 지식인의 결단이 결합한 인민의 아우성만이 해답이다. 이 교훈은 지금과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더없이 유효할 것이다.

당신은 자유로운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오웰은 강하게 주장한다. 침묵할 때, 권력은 독점된다. 독점 권력은 자유를 박탈한다. 자유가 박탈된 인간은 실존할 수 없다. 실존할 수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참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 침묵은 육체와 정신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 비극의 끝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종잡을 수 없다”

이렇게 『동물 농장』은 권력의 보편성을 통렬히 드러낸다. 권력의 보편성이란 무엇인가. 모든 권력은 본질적으로 팽창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열두 개의 성난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권력은 본질적으로 자기 복제를 시도한다. 비대해진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썩은 권력은 인민의 자유를 삼킨다. 그렇다면 권력의 부패를 저지할 방법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오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물의 모습 속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침묵하지 않고 아우성친다면 독점 권력의 무한한 자기 복제를 막아낼 수 있다. 권력의 보편성을 견제하는 것은 대중의 분노와 지식인의 결단에 달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물농장』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정 우리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독점 권력의 보편성과 자유의 죽음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나폴레온 독재 이전까지 행복하던 동물농장과 독재 이후 불행한 동물농장. 독점 권력의 본격적인 팽창은 나폴레온 집권 이후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일요일 토론 폐지를 시작으로 언로는 차단된다. 양 떼와 스퀴러를 동원한 선동이 판을 친다. 칠계명으로 대표되는 초기의 이상은 조금씩 무너지고, 역사는 조작된다. 결국 압제와 살육을 거치며 행복은커녕 자유마저 박탈된다. 오웰은 이러한 권력의 무한 팽창이 비단 동물 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권력의 끔찍한 자기 복제 경로에서 이념은 허울이요, 이상은 수단에 불과하다. 나폴레온의 집권을 위시한 독점 권력의 팽창욕은 시공간과 열두 개의 성난 목소리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진다.

이쯤에서 시선을 한 번 비틀어보자. 불행의 시작은 모두 나폴레온 때문이었는가? 나폴레온 전까지는 아름다운 동물주의 덕에 참 행복했는데. 악랄한 독재자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뒤바뀐 것인가? 얼핏 보면 그렇다. 실제로 그전까지 동물은 “짜릿하고 행복”했으며. 절대 악 인간으로부터 획득한 자유에 대해 너무나도 뿌듯해했다. 그들은 메이저 영감이 제시한 ‘인간 대 동물’의 이항 대립적 도식을 신뢰하며 존스를 몰아내고 획득한 자유에 행복했다. 인간에게 대항한 혁명과 전투의 승리를 통해 <영국의 동물들> 노래 속 “우리가 자유로운 바로 그날”의 도래가 머지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동물은 틀렸다. 그들은 자유롭지 않았다. 자유롭다고 믿었을 뿐이다. 권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름다운 꽃밭이 악한 개인의 등장으로 지옥이 되는 것이 아니다. 꽃밭으로 보이는 그곳은 사실 뿌리부터 썩고 있었을 뿐. 소설 첫 장 메이저 영감의 꿈 이야기부터 다시 살펴보자. 메이저 영감은 ‘극단적 이항대립’의 도식을 전제한다. 인간은 절대 악이다. “유일한 적” 인간을 내쫓으면 “배고픔과 과로의 기본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것이다”. 절대 악을 상정했기에 지금의 현실은 반드시 잔혹해야만 한다. 메이저 영감은 동물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토머스 홉스의 자연 상태를 차용한다. “동물의 삶은 초라하고 고되며, 아주 짧습니다”. 이러한 이항대립 도식 하에서는 억울하고 선한 ‘우리’는 단일한 집단으로 전제된다. 절대 악 인간과 대비되는 동물은 단일한 집단이고, 단일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