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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불행한 엘리트와 해체된 중산층, 양극화에 따른 다양성의 말살

<The Meritocracy Trap : 엘리트 세습>을 읽고

미국 법률전문지인 아메리칸 로이어가 발표한 ‘2021년 세계 200대 로펌(2021 The Global 200)’자료에 따르면 로펌계의 1위로 여겨지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매출액은 1조1367억원, 2위인 법무법인 태평양은 3414억원으로 무려 3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업계 1위와 2위의 차이도 현저하지만 업계 상위 1%와 업계 평균연봉은 더욱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법조계도 어려움을 겪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상위 로펌들은 매출이 더 올랐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법조계에서 하나의 사회 문제로 논의될 만큼 이 작은 집단 안에서도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리고 슬프지만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필자는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많은 로스쿨생들이 연봉이나 근무 환경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방학을 활용하여 로펌이나 법원, 공공기관 등에 인턴을 나간다. 그 중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대형로펌이다. 대형로펌의 연봉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좋은 로스쿨을 나와 높은 학점, 전문적 경력 또는 언어적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로스쿨 1학년, 2학년 때 미리 채용한다.

필자는 전업으로 공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로스쿨에 들어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수님이나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배 변호사님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공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 바로 공익전담변호사가 되지 않더라도 로펌에서 근무하면서 충분히 공익을 위한 일들을 병행할 수 있다. 로펌에서 일하다가 공익으로 갈 수는 있지만, 공익을 위해 일하다가 로펌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공익 전업 변호사의 처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신다. 그제야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게 된다. 로스쿨에서 공부만하면서 부모님께 지원받은(또는 받을) 금액들과 학자금 대출들, 그리고 집과 생활비 마련에 대한 것들. 여기에 결혼생각까지 있다면 그것까지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위와 같은 고민을 하던 중,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The Meritocracy Trap>,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함정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마이클 샌델과 같은 저자들이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저서를 연달아 출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저자인 대니얼 마코비츠가 저서에서 경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능력주의에 매몰된 국가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과거에는 상위계층이 자신의 신분을 땅이나 부동산과 같은 재산을 통해 물려줘왔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이 좋은 지능과 양질의 교육환경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물적 자본이 부를 창출하였다면 오늘날에는 노동 자본이 부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무능력한 상위계층으로 인해 두터운 중간관리자가 형성이 되었다면 이제는 상위계층은 초엘리트로 구성이 되기 때문에 중간관리자는 서서히 없어지고 최상급 관리자와 단순 노동자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육 양극화 지수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가 교육 분야에서 상위 20%가 될 가능성이 급속하게 감소하였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과거에는 땅과 공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면 오늘날 그들이 물려주는 것은 좋은 유전자와 재력으로 만들어낸 학벌과 능력이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능력주의를 신뢰한다. 실력에 따라 많은 돈을 벌고, 실력이 없는 자는 적게 버는 것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 것일까. 대니얼 마코비츠는 기존에 존재하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다면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다양성의 말살이다. 당신이 만약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로스쿨을 졸업하여, 좋은 학점을 받는다면 대형로펌에서는 당신을 조기 채용하려고 할 것이며, 주변에서는 소위 말하는 검클빅(검사, 로클럭, 빅펌)을 권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적은 연봉을 받는 일자리를 선택하려고 한다면 주변에서는 당신을 말릴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인재들을 하나의 깔때기에 담아낸다. 법조계가 아니라고 해서 달라지겠는가? IT계에는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라는 말이 있고, 대기업 취업에도 이와 비슷한 말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인재들은 다양한 선택지가 아닌 제한된 선택지에 매몰되어 좋은 복지와 좋은 연봉을 놓고 경주마처럼 달리게 된다. 그렇게 선택받은 사람들은 다시 고강도 노동에 투입된다. 평일에는 거의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신입뿐만 아니라 상급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미국의 경우에도 “미국 로펌의 경우, 흔히 초임 변호사뿐만 아니라 파트너 변호사에게까지 1주일에 60~80시간, 심지어 100시간 동안 일하도록 요구한다.”고 서술한다. 이에 반해 비숙련 업무를 반복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중간 관리자의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또다시 단순한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적은 임금을 주는 단순 업무를 반복하거나 아니면 노동을 통해 모은 돈으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 추가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함을 통해 고도의 숙련 노동자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회구조는 양극단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론에 의하면, 결국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아실현”이다. 인간의 본질은 다양성에 있다. 전 세계에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인간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다른 잠재력, 기호, 개성을 가진다. 능력주의의 함정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다양한 속성을 가진 인간을 양극화하고, 자본과 연관되는 능력만으로 분류해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바라던 것이 현재 업무와 정확히 일치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늘어나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다양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두터운 중산층이다. 양극화는 분열을 낳지만, 두터운 중산층은 사회 구성원끼리 공유하는 경험을 기반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합의에 이를 수 있다. 모두가 위 또는 아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중간에서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능력주의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놓았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물적 자본을 세습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체제가 사회를 둘로 나누고 있다는 것, 능력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모두가 경쟁하고 평가받는 지금의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답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공론의 장에서 찾아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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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철 - 김만권 <새로운 가난이 온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 1장, 바야흐로 ‘인공지능시대’

인공지능이 뭔지 조금 두려운신 분들에게 전하는 첫 번째 책 소식

“역사에서 모든 종말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