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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영 - 존 롤스 『정의론』

『정의론』, 시간과 시간 속에서 이어 읽기 (부제: 정의(Justice)와 정의(正義)에 대하여)

지난 글과 같이 <정의론>이라는 철학고전이 담고 있는 시간 속의 ‘콘텍스트’를 <정의론>의 텍스트와 이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만 이번에 이어볼 시간은 서양의 시간, 곧 서양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정의론>을 서양과 동양의 시간 혹은 양자의 문맥 속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정의(Justice)와 정의(正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롤스의 <정의론>이라는 하면, 곧바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 혹은 “무지의 배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용어를 떠올립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배일”이란 롤스가 고안한 사고실험으로서,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모두가 공정한 사회 속에서 공정한 규칙과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이 가상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과 서로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 중 그 누가 이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바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상 상황 속에서 우리는 ‘최소 수혜자에 대한 최대 이득’이라는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저는 롤스의 <정의론> ‘권리와 권리의 공정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평등한 상황 속에 놓이지 못한 개인과 개인이 지닌 권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의 사회 속에서 공정하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인 것입니다.

그런데 동양의 역사 속에 자리 잡은 우리의 정의론(正義論)은 조금 다릅니다. 다들 <맹자> 양혜왕 상편 속 맹자와 양혜왕의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은 천리 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맹자에게 나라의 이로움(利)에 관해 묻습니다. 이에 대해 맹자는 곧바로 “왕께서는 하필 이익(利)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인’은 조금 제쳐놓고 ‘의’를 살펴볼까요? 여기서 ‘의’는 곧 ‘의로움’으로써, ‘공공의 정의(正義)’입니다. 한자를 살폈을 때 의(義)는 양(羊)과 아(我)가 합쳐진 글자입니다.아(我)는 ‘나’라는 의미와 함께 톱, 곧 나무나 쇠붙이 따위를 자르는 데 쓰는 연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는 ‘양을 톱으로 자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양을 톱으로 자르는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내가 가진 양고기를 나눠주기 위함입니다. 고로 동양에서 정의인 ‘의’는 ‘희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익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으며 희생이 좋다고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양자는 모두 좋은 것이면서 또한 과할 때는 나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개인의 권리 추구가 극단으로 이를 때는 타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 번째로 한 명의 사람이나 소수 집단의 커다란 윤리적 희생은 그들에게 크나큰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권리와 희생, 이 양자 관계가 모든 윤리적 인간에게 근원적이며 근절할 수 없는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야이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제가 제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신 분께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라 물으니 그분은 “애초에 답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저 말씀하시길 “다만 이 불가능한 균형을 위한 기우뚱거림이 당신이 깨어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 모순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모순과 정면으로 마주 서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상의 말은 제가 다른 분께 먼저 듣고 여러분께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철학은 인간 삶에서 제거될 수 없는 모순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그 모순을 이겨낼 힘과 그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며, 모든 이에게 이를 연습할 것을 권합니다. 여러분은 이때까지 어떻게 당신 삶의 여러 모순을 이겨내셨나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저는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긴 글에 마침표를 찍으며, 오늘도 여러분이 행복하시고 건강하시며, 그 일상에 소소하고 다채로운 웃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