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 않다.jpg

강진철_프로필 사진.jpg

강진철 - 박원익, 조윤호, 『공정하지 않다: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MZ세대의 저항에 대하여

586세대가 짱돌을 던져 이륙한 민주주의 아래 2030세대는 나름 풍요롭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행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2030세대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인가?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한창이던 2021년 5월, 한 교수님께서 수업 중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비대면 수업에 만족하나요? 학교에 항의 하고 적극적으로 여러분의 권리를 쟁취해야지, 왜 가만히 있는지 잘 모르겠어.”

이에 학생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거나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나 역시 속으로 ‘그래야 하는데’ 생각은 하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학생들만의 책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 300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내면서, 학교 시설도 이용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 비대면 수업을 굳이 원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비대면 수업이 편리하다는 장점보다는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단점에 더욱 많은 학생이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학교의 비대면 수업 조치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 것은, 청년 세대가 그저 저항정신도 없는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일까? <공정하지 않다>를 읽고, 구조화된 불평등 속에서 청년 세대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일지 짚어봤다.

인터넷 창에 검색한 저항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어떤 힘이나 조건에 굽히지 아니하고 거역하거나 버팀. 2. 주가의 오름세가 매도 세력에 의하여 견제되거나 멈추는 일. 3. 물체의 운동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즉 저항이란 상당한 힘을 들여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작용해야 하고 거역하거나 때로는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퍽이나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저항을 밥 먹듯 숨 쉬듯 하는 세대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부모님 세대일 것이다.

데모하느라 대학을 약 10년 만에 졸업했다는 얘기가 무용담처럼 통하던 시절이었다. 만약 2022년 오늘 12학번이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면 주변에서는 ‘어디 아프냐’, ‘집에 문제가 있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했던 586세대에 비해 오늘날 2030 세대는 자신의 이익과 안위가 우선이다. “요즘 젊은 애들은 자기밖에 몰라.”라는 비판을, 기성세대로부터 으레 받고는 한다. 물론 모든 청년 세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은 그저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이기적인 집단일까? 이기적인 것처럼 잘못 보이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기적이라면, 청년이 그렇게 된 책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